내가 나를 어떻게 보여줄까: 자기 표현의 심리학

2025. 7. 9. 21:00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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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표현

 

1. 대리적 영광

사는 지역의 야구팀이나 다니고 있는 학교의 축구팀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왠지 우쭐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소속된 팀의 성공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일정한 몫의 영광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소속팀의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어도 그 영광을 함께 누리려는 경향이 보인다. 로버트 치알디니와 그의 동료들은 성공한 사람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기 이미지를 높이려는 성향을 ‘반사된 영광 입기’라고 설명했다. 이는 주변 사람들이 성공할 경우, 비록 그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해도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실재를 확인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은 전통적으로 미식축구의 강호로 알려진 7개 대학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가설은 주말 경기에서 대학 미식축구팀이 승리할 경우, 그 다음 월요일에 학생들이 학교 로고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교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연구 결과는 이 가설을 뒷받침했다. 게다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의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상대 팀을 압도한 승리는 그만큼 학교의 탁월한 우수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도 있다. 아리조나 주립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최근에 개인적 실패를 경험한 학생들이 개인적 성공을 경험한 학생들보다 더 강하게 대리적 영광과 관련된 행동을 보일 것이라는 가설이 세워졌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테스트가 실시되었고, 학생 절반에게는 검사 결과가 아주 좋다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나쁘다고 각각 피드백을 주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학교 축구팀의 최근 경기 결과를 기술하도록 요청했다. 예측한 대로, 팀이 승리했을 때 학생들은 더 많은 대리적 영광과 관련된 태도를 보였다. 특히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던 학생들은 결과가 좋았던 학생들보다 “우리가 이겼다”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했다. 팀이 패배했을 때는 단 17%만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팀이 승리했을 때는 41%가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라는 표현을 거의 비슷하게 사용했다. 팀이 이겼을 때는 25%, 졌을 때는 24%가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결과는 테스트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손상된 자기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자기 팀의 승리와 자신을 연결 지으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도 관찰된다. 주변의 실패와의 연결은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치알디니는 학생들에게 전화해 몇 주 전의 미식축구 경기 결과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소속 대학이 이긴 경기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패배한 경기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이후 설명 내용을 녹음하여 분석한 결과, 승리한 경기를 설명한 학생들은 “우리가 휴스턴 대학을 17 대 14로 이겼습니다”와 같은 식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반면, 패배한 경기를 설명한 학생들은 “점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이 졌습니다”처럼 ‘그들’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 때문에 우리가 전국 챔피언이 될 기회를 놓쳐버렸어요”처럼 화가 섞인 말투도 관찰되었다. 팀이 승리했을 때는 소속감을 강조하려고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패배했을 때는 거리감을 두기 위해 ‘그들’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셈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을 승자와 연결해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실패한 대상과는 거리를 두며 자기 이미지를 보호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보다 긍정적인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어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2. 자기- 불구화

받은 시험 성적이 매우 좋지 않다면 이 사태에서 손상된 자존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흔히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럴듯한 구실, 즉 변명거리를 찾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외부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이 공정하지 않았다거나 친구들 또한 그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는 식의 설명은, 지능이 낮아서 혹은 공부 방법을 몰라서 실패했다는 진술보다 자존감을 더 잘 보호해준다. 이렇게 결과가 발생한 이후에 변명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교묘한 전략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미리부터 변명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인상관리 전략은 중요한 과제에서 실패할 경우 체면이 손상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주 관찰된다. 때로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미리부터 실패의 구실을 스스로 만들고, 실제로 실패했을 경우 그것을 자신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둔 구실에 돌리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예컨대, 학교 앞 술집은 중요한 시험 전날에도 학생들로 북적이곤 하는데, 이는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전날 과음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도 자신이 없을 때는 실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능력 탓이 아니라 외적인 요인으로 귀인시켜 자존감을 보호하고, 반대로 뜻밖의 성공을 거두었을 경우 자존감을 더욱 고양시킬 수 있게 된다. 이를 자기-불구화 전략이라 부른다. 시험 전날 술을 마신 학생이 성적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준비 부족이나 능력 부족이 아닌 술을 마셨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은 아주 흔한 모습이다. 절감 원리에 따르면, 어떤 수행 결과의 원인이 복수일 경우 각각의 원인에 대한 귀인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데, 이 경우 술 마시기라는 불구화 행위가 존재함으로써 능력 부족에 대한 귀인이 절감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어려운 과제를 앞두고 왜 자발적으로 술을 마시는 등 수행을 해치는 행동을 택하는지를 밝히기 위한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쉬운 문제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풀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안내한 뒤, 이후에는 지적 능력을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약의 효과를 시험해보겠다는 설명과 함께, 두 가지 약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선택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어려운 문제를 풀 것이라 기대한 사람들 중 70%는 지적 기능을 방해하는 약물을 선택했으나, 쉬운 문제를 풀 것이라 기대한 사람들 중에서는 단 13%만이 해당 약물을 선택했다. 이는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능력이 아닌 약물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수행을 방해하기 위해 술이나 약물 복용, 미적거리기, 주의 분산, 불안, 우울, 또는 여러 과제에 동시에 관여하는 등의 다양한 전략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기-불구화 전략에는 성별 차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남성은 태만하거나 음주를 하는 방식의 전략을 더 자주 사용하는 반면, 여성은 신체적 증상이나 스트레스를 더 자주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기-불구화 전략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이 전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 그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변명을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려 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오히려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불구화를 사용한다. 즉, 최소한의 준비만으로도 높은 성과를 보이면, 그 자체가 특별히 유능하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한 실험에서는 검사 점수를 기준으로 대학생들을 자존감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으로 나누고, 이들에게 곧 비언어적 지능 검사(자존감에 중요한 과제) 또는 눈과 손의 협응 검사(자존감에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과제)를 하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그 후 검사에 참여한 피험자 중 절반에게는 이 검사가 지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진단해주는 검사라고 설명함으로써 실패를 피하고 싶게 만들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이 검사가 영재 여부를 판별하는 검사라고 설명함으로써 이미지 향상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다. 이후 피험자들에게 원하는 만큼 연습할 수 있도록 하고 연습 시간을 측정했는데, 연구자의 예측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지적 결함을 진단하는 검사에서 연습을 덜 했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영재를 진단하는 검사에서 연습을 덜 했다. 이러한 결과는 자기-불구화가 일종의 ‘승-승’ 전략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실패하더라도 구실을 통해 체면을 유지할 수 있고, 성공할 경우에는 특별히 유능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기-불구화 전략이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는 사실이다. 실패에 대비해 수행을 저하시킬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내는 자기 방어적 행동은 결국 실패를 자초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또한 자기-불구화를 사용함으로써 실패가 능력 부족 때문이라는 평가는 일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타인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자기-불구화를 사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유능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만약 이러한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타인들은 해당 전략을 통해 그 사람을 게으르거나 알코올 문제를 가진 사람, 혹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불구화는 결코 권장할 만한 인상관리 전략이 아니다.

 

3. 자기- 감찰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제시하는 인상을 연기하는 사회적 배우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연극배우처럼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능숙하게 변화시키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려 하면 얼굴부터 빨개질 정도로 서투르게 연기한다. 이렇게 자기 제시 능력에 개인차가 있다는 점은 자기-감찰 이론으로 정리된다. 자기-감찰이란 타인에게 어떻게 지각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타인에게 주는 인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의 행동을 상황에 맞게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정도를 말한다. 자기-감찰 능력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민감하고, 상황적 단서를 잘 포착하며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데 능숙하다. 이들은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상대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련 정보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또한 상황의 요구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인상 관리를 수행하며, 필요한 행동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감정이나 태도보다는 상황적 기대에 더 잘 부응하며, 정서를 조절하고 비언어적 신호를 자발적으로 신중하게 사용한다. 나아가 타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특성 덕분에 적극적인 자기 제시 전략을 선호하고, 대화를 먼저 시작하며, 적절한 자기 노출을 하기도 한다. 반면, 자기-감찰 능력이 낮은 사람은 상황의 요구나 타인의 반응에 덜 주의를 기울이며, 인상 관리 능력도 낮은 편이다. 감정이나 신념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외적인 행동과 내면의 태도 간에 일관성이 높고, 자신의 의견과 가치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자기-감찰 개념을 이해하면서 어느 쪽에 가까운지, 또 어떤 특성이 더 나은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자기-감찰 수준이 높거나 낮은 것은 모두 나름의 장단점을 지닌다. 높은 자기-감찰자는 사회적 상황에서 유연하게 행동하며 통찰력과 민감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계에서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의 신념이나 정체성보다 상황에 더 맞추려는 모습 때문에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로 비칠 수 있다. 반대로 자기-감찰 수준이 낮은 사람은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일관성 있는 목표를 추구하는 원칙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 민감성과 융통성이 부족하고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고립되거나 배척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극단을 유동적으로 오가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자기 제시 방식을 유연하게 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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